내글 모니터
로그인하시면 올리신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손님 (54.♡.100.134)  
손님 (207.♡.13.89)  
손님 (211.♡.9.197)  
손님 (119.♡.72.111)  
손님 (182.♡.20.158)  
손님 (106.♡.160.109)  
손님 (222.♡.131.113)  
 접속자 7, 회원 0, 비회원 7
방문자 수 / Counter
오늘 : 49
어제 : 63
최대 : 707
전체 : 536,994
  계정 및 게시판 정보
File : 177.3 MB
Data : 137.7 MB
DB : 34.0 MB
 
Board : 45
Data File : 364
New Article : 0
Total Article : 975
New Comment : 0
Total Comment : 321
New Member : 0
Total Member : 614
Connect : 7  (Member : 0 )
New Point : 0
Total Point : 1,768,092
   
새로운 선교패러다임 모색: 한국적 선교신학 개발 - 김 영 동 교수(장신대, 선교학)
  글쓴이 : 태국     날짜 : 12-12-13 12:48     조회 : 4866    
  트랙백 주소 : http://www.pckworld.net/bbs/tb.php/pckwmf2012/22
새로운 선교패러다임 모색: 한국적 선교신학 개발

김 영 동 교수(장신대, 선교학)

1. 왜 ‘한국적’ 선교신학인가?

21세기 다원화되고 동시에 파편화되어 가는 지구화 시대에 한국적 선교신학을 화두로 삼아 선교지도자들이 토론을 하는 데는 분명 깊은 의도가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선교 100년을 지나면서, 특히 지난 80년대 이후 급성장한 한국교회 타문화권 선교사 파송과 선교실태에 대한 반성적 숙고가 제기되어 온 상황으로 보아서 이 주제의 심각성과 긴급성을 감 잡을 수 있겠다. 선교의 위기는 자칫 한국교회의 위기와 맞물려 나타날 것이고, 국가의 미래 존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어떻게 보면 순수한 열정과 헌신으로 세계 선교에 동참해왔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순진하고 어린 선교로 하나님의 선교에 혼란을 가중시켜왔다고도 할 수도 있다. 부분을 전체화하여 한국교회 선교를 통째로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인정하나, 차제에 한국교회 선교 지도자들이 교단·교파나 신학 진영을 잠시 내려놓고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관점에서 한국교회 선교를 진단하고 강점을 계속 발전시키되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수정하고 폐기해야 할 것은 그리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한국적 선교신학이란 말은 그 자체로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로서 보편성과 통일성을 가짐이 당연지사인데 왜 굳이 선교신학에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여야 하는가 라는 의심을 품을 수 있다. 보편성을 희생하고 특수성을 찾자는 말인가? 보편성을 지니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영생의 소망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하는 기독교 선교는 어느 한 문화나 나라나 인종이나 종족에 제한될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적 선교신학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선교의 왜곡내지는 파당성을 조장하자는 말이 아닌가? 교회사를 보는 사관이 ‘민족사관’이면 한 민족 자체의 특수성(독특성)을 부각하며 그 민족에 임한 고유한 성령의 역사를 체계화하고 해석함으로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반면에 ‘민족사관’은 복음과 교회의 보편성을 약화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고, 민족교회의 배타성을 조장하여 세계 기독교의 연합과 일치를 저해하는 역기능을 배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적 선교신학의 추구도 선교의 왜곡이나 역기능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선교신학을 진지하게 화두로 삼고 토론에 임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것은 지난 300여년의 근현대 개신교 선교가 너무 서구중심주의적 선교행태를 보여 왔으며, 그것이 미친 긍정적 영향도 없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약점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러하다고 본다. 또한 한국 선교가 지난날의 서구 선교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거나 이미 서구 선교는 변화의 키를 잡았는데 한국 선교는 과거 서구선교의 오류와 더불어 한국인·한국문화 특유의 문제점이 선교현장에서 드러나기에 논의를 하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말하자면 ‘온고지신’하되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하고, 일방적이고 배타적 선교보다는 쌍방적이며 상호보완적인 동반자 선교를 진작하는 관점에서 한국적 선교신학을 논의해야하고, 다양한 문화 배경에서 온 선교사들간의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을 장려하는 목적에서도 한국적 선교신학의 토론이 요청된다. 무엇보다 한국인·한국문화가 지닌 독특한 특성을 살려 국제적인 선교단체와의 협력관계에서나 선교현장에서 복음의 보편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상황화하는 방향으로 선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세계 기독교와 연대하며 복음의 보편성을 견지하되 선교 현장의 다양성과 복잡성이란 장벽을 뛰어넘는 복음 선포를 가능하게 하는 한국적 선교신학의 도모는 필요하며 시의적절하다.

2. 한국적 선교신학 논의의 배경

2.1 과거 선교역사의 반성과 교훈
첫째로 한국교회는 자기중심적/ 개교회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선교봉사활동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둘째로 과열경쟁과 세상적인 명성을 추구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셋째로 너무 모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영전전쟁을 부추기며 상식과 이성을 무시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넷째로 한국교회 선교와 봉사가 너무 실적주의와 자본주의 가치에 빠져들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너무 힘에 의한 선교, 강자의 선교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준다는” 빚진 자와 청지기 정신을 상실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2.2 한국 교회 선교의 강점과 약점, 한국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

한국선교의 기회/ 강점
1. 보편적 복음과 교회의 대변자로 자처: 서구 교회는 제국주의적인 이미지 지님, 현지인과 현지교회, 현지 정부로부터 신뢰받기 용이함
2. 개척자 정신으로 새로운 사역 개발: 전도 교회개척 외에 신학교, 교회개척, 미션스쿨, 의료선교, 농업선교, 우물파기, 소액투자사역, 종자사역, 동물 분양 사역, 스포츠사역 등
3.  타문화 적응성과 인내심: 낯선 문화와 의식주 환경에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한다. 생존력이 강함, 즉 낯설고 힘든 상황에서 후원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도 잘 적응한다. 국제 선교기관에 팀워크로 공헌, 영어 중심에서 현지어 중심으로 전환에 기여: 몽골, 콩고. 인내심, 즉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견딘다.
4. 헌신적 자세, 분명한 소명의식: 자기가 맡은 일에 열심을 가지고 참여한다.
5. 큰 비전: 한국교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믿음에 근거한 큰 선교비전을 품는다.
6. 아랍 세계에서 한국선교사 환영받음: 공통의 문화유산 공유 - 가족 중시, 인간관계 중시
7. 현지 신자의 모델링: 복음주의적 신앙과 선교적 열정이 있다. 믿음이 좋다.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에 힘쓴다. 제자도, 전도, 신앙생활
8. 열정적인 사역, 부지런한 기도로 다른 나라 선교사들에게 강한 도전과 자극을 줌

⦁한국선교사의 약점/ 위협
1. 열정은 있으나 선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부족하다.
2. 선교현지를 폭넓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선교현장을 상식적 차원을 넘어서 전문적이며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노력이 약하다.
3. 한국적인 경험과 교회형태 이식: 선교사가 속해있는 한국사회와 문화, 교회적 배경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선교현장에 반영한다.
4. 현지 문화이해 부족: 단일 문화로 토론이 곤란함, 팀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됨, 적응은 잘 하나 자기중심적으로 현지를 이해한다. 계급적인 하위문화 조성으로 팀워크 약화시킴
5. 자존감 부족: 열등의식과 비교의식이 강하고 경쟁적 선교를 한다.
6. 스트레스 해소법이 약하다.
7. 언어부족: 초기에 언어공부에 집중하기보다 일찍 사역을 시작하기 때문에 언어를 충분히 배울 시기를 놓친다. 문화 차이와 언어 부족으로 사역과 의사소통에 장애, 서구 선교역사와 지혜로부터 배움 기피
8. 사역을 문서로 정리하여 남기지 않기 때문에 후임선교사들이 백지에서 출발하고 전임자들의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9. 체계적인 선교전략의 부재이다.
10. 리더십 스타일: 계층적, 다른 나라 선교사와 충돌, “한국적인 방식이 최선이다”는 자만심, 특히 목사 선교사의 우월의식 강함- 팀워크 깨어짐 동료선교사와의 불화: 서로의 특징과 은사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11. 협력보다는 개인중심의 활동을 하고 있다.
12. 국제적인 매너가 부족하다.

⦁한국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
1. 후원교회와의 갈등: 후원교회가 바른 선교이해 없이 본 교회 목회정책을 선교지에 강요하며 결과를 기대할 때
2. 자녀교육: 성장하는 자녀들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3. 선교사역 후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아 불안하다.
4. 자기사역을 진단하고 점검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5. 선교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배, 선임선교사가 없다.
6. 특정 사역에 맞는 전문사역자의 파송이 없다. 예) 교육 선교사
7. 후원체계개선: 선교사 자신이 개별적으로 후원금을 모금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8. 심리적 외로움과 내면적 상처 치유의 어려움 

3. 한국적 선교신학 개발 사례

1) KWMA의 ‘한국형 선교’(Korean Aspect Mission) 개발

2) 이문장의 한국적 선교 모색

3) 박영환의 한국적 선교신학

4) 김종성의 한국적 선교신학


4.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향하여: 한국적 선교신학의 모색 시론

한국적 선교신학은 서구적 선교신학의 도구성과 편파성과 특수성을 극복하고 변화된 세계 선교 지형에 부응하는 선교신학으로 형성되어야 하는데 다음과 같은 점을 특히 고려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1) 한국 교회는 “선교가 교회의 어머니”라는 관점에서 교회론을 갱신하여 성령의 능력 안에서의 선교적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
2) 기독교의 정체성의 모색과 상황화의 바른 실천 방향이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
3) 고난의 영성과 약함의 선교 영성을 삶과 사역에 구현하는 선교 신학과 선교가 되어야 한다.
4) 유사 문화권 선교를 전 세계 교회의 동반자 협력 선교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 비교 우위의 원리들을 적용하여 동반자 선교를 이루어야 한다.
5) 한국인, 한국문화의 특수성인 ‘정’의 문화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환대’(hospitality)의 선교를 실현한다.
환대는 예수님의 말씀과 초기교회의 역사만 아니라 현대의 신앙과 선교를 위해서도 주된 토대가 된다. 신약성경의 환대에 대한 연구에서 존 퀘니그는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기독교 공동체의 특성이 아가페, 봉사 외에 환대임을 환기시킨다. 퀘니그는 파커 팔머(Parker Palmer)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환대의 신학을 수용한다. John Koenig, New Testament Hospitality, 김기영 옮김, 『환대의 신학』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2), 17-35.
 나우웬은 환대가 주관과 객관의 차이를 넘어서 상호간의 소중한 은사를 밝히며 서로에게 새로운 삶을 나누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호간의 주고받음의 환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작용할 때 발생한다. Henri Nouwen, Reaching Out: The Three Movements of the Spiritual Life (New York: Doubleday & Co., 1975), 47.
 팔머는 가정이나 인식의 공간이나 관계없이 우리 개인의 공간으로 나그네를 초대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 우리 개인의 공간이 확대되어 이전과는 달라진다. 딱딱하지도 않고, 답답하지도, 또 엄격하지도 않고 열린 공간이 되고, 포용적이며, 자유롭게 된다. 나그네를 환대하면 우리의 공간이 빛으로 덮여지며, “다른 눈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삶이 새롭게 된 것을 알게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 Parker Palmer, The Company of Strangers: Christians and the Renewal of America's Public Life (New York: Crossroad, 1981), 65.
 준다.
진정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선교신학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러한 환대를 실천하는 것이다. 환대를 통해 타문화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심리적 영적 골짜기를 돋아 다리가 놓이게 하고, 상호간의 자기 발견과 은사를 깨달으며 포용적이며 자유롭게 열린 공간에서의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환대는 남을 단순히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열림과 새롭게 됨이 발생하며, 진정한 하나 됨이 실현되게 할 것이다.
6) 성경적 선교 윤리의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
7) 이제 선교는 선교의 경건성(영성)을 회복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 선교신학과 실천의 비종교화 경향
프리만 나일스는 다차원적이며 다면적인 선교의 성격을 다섯 가지 과정적인 실천으로 분류하였다.
① 회심-죄 사함-새 생명-영생
② 화해-평화-공동체 형성
③ 해방-정의-인간화
④ 희생적 돌봄-치유-통전성
⑤ 설교와 가르침-세례-교회 성장
이러한 다면적이며 다차원적인 선교는 바로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선교의 양상과 부합되며, 이 중 어느 한 요소가 다른 요소와 배타적인 충돌이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선교의 다면성은 하나님의 은사의 다양성과 선교지 상황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이상의 선교신학 유형이나 선교의 다차원적인 실천에서 우리가 배우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지만 서구 선교와 신학에서 결핍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선교의 경건성 혹은 수행의 영성이다. 여기에서 선교의 경건성이란 선교의 목표가 아니라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 대한 것이다. 선교사의 존재 형태와 사역 방식이 기술문명적으로 보이고 현지인의 세계관에서 볼 때 비종교적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영혼구원과 교회개척(성장)을 위한 복음화에 중점을 두는 선교사이든, 사회봉사와 인간화를 중시하는 선교사이든, 이 양자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선교를 추구하든, 종고교간의 대화를 주장하든, 문제는 선교사들이 종교적이지 않고, 구도자(求道者)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선교 현지 사람들이 볼 때 기독교 선교는 덜 종교적으로 비추어진다.

‘선교’ 또는 ‘선교사들’을 언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리 마을에 들어와 살고, 병원에서 일하고, 성경을 번역해 주고, 여성들에게 위생과 바느질을 가르쳐 주고 있는 외국 형제·자매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과 돈을 가지고 와서 우리 교회를 운영한다.M. R. A. Kanyoro, “Mission for the African Church: Lessons and Challenges from the Book of Acts,” in AICMAR Bulletin Vol (1), 2002, p. 76. 이 문장,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의 탐색: 한국적 관점에서”에서 재인용.
 

(2) 비기독교 영성에 참여하는 한국적 선교신학
피에리스는 기독교 역사상 상황화의 모델을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한다. Aloysius Pieris, Theologie der Befreiung in Asien. Christentum im Kontext der Armut und der Religionen, 『아시아의 해방신학: 가난과 종교 속의 그리스도교』 (왜관: 분도출판사, 1988), 100-106.

① 라틴 모델: 비기독교 문화에로의 육화(肉化)
② 희랍 모델: 비기독교 철학에로의 동화(同化)
③ 북유럽 모델: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절충(折衷)
④ 수행의 모델: 비기독교 영성에 대한 참여(參與)

아시아의 정감에 가장 적절한 것으로 평가받는 수행의 모델로서 ‘비기독교 영성에 대한 참여(參與)’이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아가페적 투신과 세상을 등지는 (fuga mundi 세상의 도피) 영지적 이상의 통전으로 실현된다. 자발적 가난(voluntary poverty)은 아시아 민중들의 제도적 가난(비자발적 가난 forced poverty)을 경감시켜주는 방향으로 적극 나아갈 때, 즉 해방을 실현하는 것으로서 진정한 수행이 되고, 또한 거기에서 상황화와 해방이 동시에 실현된다. 성서적 표현으로 하면 아브라함적 영성과 세례 요한적 영성의 통섭이다. 참된 영성은 “가난한 사람이셨던(was) 예수를 따르고, 이어서 지금 가난한 사람들 속에 현존하시는(is) 그리스도를 섬긴다” 위의 책, 48.
는 의미다. 이렇게 영성은 가난과 종교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되며, 이런 가난과 종교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 아시아 선교의 바람직한 형태는 영성에의 참여라고 한다.

(3) 기술문명 선교와 정신문명 선교

8)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선교가 계속되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는 성령의 부드러운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돛단배와 같이 움직여야 한다. 2004년 태국 파타야에서 열린 로잔 포럼의 의장인 로저 패럿 (Roger Parrott)은 미래 선교의 성패여부는 성령의 바람을 감지하고 그 성령의 바람을 동력으로 하여 선교에 임하느냐 아니면 그저 기술공학적 발전에 의존하는 인간의 사업으로 전락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의 선교의 동기와 힘이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에 대해 비유적으로 돛단배와 모터보트를 비교하면서 말하였다.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선교사는 성령의 바람으로 움직이는 돛단배를 운전하는 자이지, 결코 휘발유만 필요로 하는 모터보트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하였다. 패럿은 미래의 선교가 성령의 바람에 따라 움직여야 함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http://www.cbn.com/CBNNews/CWN/100804Lausanne.asp (2006. 4. 27)
 성령이 이끄는 선교를 하려면 먼저 성령의 바람을 알고 그 바람의 방향을 감지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성령의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야 한다. 성령의 바람을 감지하기 위해 필요한 분별력, 돛을 올리고 바람을 받아 새로운 해안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따라서 성경과 성령과 선교는 함께 어울려 나가야 한다. Samuel Escobar, A Time for Mission, 권영석 옮김, 『벽을 넘어 열방으로』 (서울: IVP, 2004), 153.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 특히 어머니의 성품 같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감싸 안는 성령의 선교는 교회개척과 성장을 무조건적으로 우선시할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을 이루는 것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5. 결론: 새로운 출발을 향하여

로마서 14장 16-19절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태국  12-12-13 12:48 | Reply |
특강 김영동교수

신학은 하나님 배우기이다. 지금까지는 하나님 이해하기로 접근했지만 현요한교수는 하나님 배우기로 정의하고 있다. 동양적 관점에서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적 선교신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국사람은 정이다.

모순이고 역설이 같이 공존하고 관계하는 것이 진리이다. 자연과 은총, 신앙과 이성 등의 모순을 관계적인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관계성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신학의 관점은 형제, 자매, 친밀한 부부처럼 관계에서 1단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권능을 받으면 제3자와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이방인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관계는 적, 원수 즉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한국사람은 감이다.

한국선교사가 월등한 것은 감을 잡아서 선교한다. 그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큰 파워가 나타난다. 하지만 감을 잘못잡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직관 속에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이루어진다. 서양사람들은 1년전에 계획을 세우지만 우리는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개척을 잘하는 것 같다. 한국신학은 단점을 극복하면서 장점을 개발해야 한다. 치밀한 분석과 계획은 약하지만 순발력이 강하다. 시스템은 약하지만 우리는 정책은 아무리 잘 세워도 임기응변식으로 운영한다. 서양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조합해서 적용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시행착오나 중복투자 없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한국사람은 열이다.

한국사람들은 열정이 있다. 한국사람은 열을 받아야 일이된다. 개콘 용감한 녀석들에서 “걱정 대신 열정으로”라고 외치는 장면이 늘 등장한다. 주체는 선교사이고 자료도 선교사이다.

앞으로 과제는 선교사들이 경험한 경험의 진수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글로서 나타나게 할 것인가? 서정운총장께서 총회에 보고한 자료가 없다고 한다. 자료를 잘 보관해서 그것을 통해서 신학화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장점들이 있는데 최근 극소수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다. 


김종성선교사는 한국적 선교신학 4가지를 말하면서 “한국선교는 반 네비우스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장로교회가 네비우스 원리가 성공한 교회라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자립, 자치, 자전이 성공했는데, 한국선교사는 선교현장에서 반 네비우스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원리를 선교현장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문제가 있다. 19세기적 신학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은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선교지에 선교사를 보낼때 한국과 가까운 지역을 선택하고 있다. 교인들이 가보고 싶은 곳으로 선교지를 선정하고 있다. 한국이 어려울때 아프리카, 중남미 등 먼 곳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해져가고 있는 지금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서 선교지를 선정하고 있다. 선교에 참여한다는 원칙하에 선교를 오염시켜 나가고 있다. 선교사도 동남아에 소명없는데 가야하고, 담임목사도 동남아에 관심이 없는데, 돈이 가는 곳으로 선교를 진행하고 있다. 숫자를 늘이기 위해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면 선교를 가볍게 만들고, 선교를 오염시켜 나갈수 있다.

전체적으로 한국교회는 개교회 중심적이다. 그 이유는 개 교회의 자립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자원리의 역기능이 관계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삼자원리의 역기능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이다.

서구적 관점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적 영성을 잘 살려서 전세계 교회가 관계성을 가지고 리더십을 가진 한국적 선교신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질문 이종실선교사: 선교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함께 섬겨나가는 일이다. 선교를 바르게 한다면 보편적인 몸인 교회로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선교하는 것과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가 확대 재생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과연 한국교회가 바르게 선교하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신학적 배경이 교회성장신학이론 때문은 아닌가? 실제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들이 선교의 성과를 이야기할때 교회건축 숫자, 세례 숫자등 우리 스스도 그 성장신학에 빠져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런것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과 신학적 대안은?

김영동교수: 개 교회주의 한국선교, 업적주의 선교가 교회성장학의 이론때문은 아닌가 질문하셨는데, 교회성장학 때문이 아니고 교회성장학을 잘 못 받아들인 한국교회의 지도자들때문이다. 교회성장학은 선교현장에서 나온 이론이다. 맥가브란은 당시에 타 선교사역에 비해서 교회성장이 부족했기 그 분야를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잘 못된 오해로 성장을 이해하고 있다. 극복대안은 선교적 교회론이다.  교회 본질이 선교라는 것이다. 선교를 교회의 기능을 보지말고, 본질로 인식해야 한다. 모이는 목적은 흩어지는 것이다.

김상길선교사: 선교적 교회가 전통적인 선교를 얼마만큼 잘 하도록 하는 것인가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장신대의 신학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교회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교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한 견해?

김영동교수: 전통적인 선교를 위한 노하우가 선교적교회론의 핵심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신학적 관점이 선교적 교회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신학교육에 고민이 많이 있다. 우리는 신대원을 다닐때 조직신학을 가진 우위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성서신학 우위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선교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극 소수이다. 신대원 900명 학생들 가운데 늘 100명 정도가 선교학을 배우고 졸업한다. 3학년 1학기에 필수과목으로 선교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는다. 교수들부터 선교현장을 많이 방문해서 의식을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임종표선교사: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다 선교사이다.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것도 선교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선교현장의 선교신학 부재의 원인을 19세기 선교사들의 잘못으로 돌리는데 현재 선교신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영동교수: 보쉬는 선교를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으로 보고 있다. 선교사 애매모호해 줄 수있고, 선교와 선교 아닌것에 대한 경계가 없으면 선교가 침해 당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범 선교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선교는 근본적으로 돈의 논리가 아니어야 한다. 후원논리가 작용하면 범 선교주의에 빠지게 된다.

미국에서는 1935년에 선교사 훈련을 실시했고, 그 전에 파송된 사람들은 훈련을 받지 않고 파송되었다. 한국교회는 그 분들을 보고 스스로 선교를 배웠다. 한국교회도 1980년대 우리의 선교역사에 대한 연구없이 선교를 시작했다. 장신대도 1980년대에 선교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강의 배정에 있어서 선교학에 대한 열악한 강의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광순교수: 장신대에서 86년부터 선교신학을 가르쳤다. 그때부터 선교학 부전공 33학점제도가 있었다. 타 학과에서 부전공 과정으로 인해서 불균형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교수회에서 부전공제도를 없앴다. 그래서 세계선교대학원을 1993년에 전문대학원으로 허가를 받았다. 박사과정을 선교학교수 부족으로 인해서 시작하지 못하고 석사과정으로 시작했다. 여러가지 열악한 상황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Copyright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선교사회 2006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galilee